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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누군가에게 설명해야할 때, 흔히 직면하게 되는 몇가지 경우가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누가 어찌어찌하여 어떻게 해서 어떻게 되는 내용의 영화야! 라고 명확한 줄거리에 대해 거창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있는데 불행히도 그런 영화는 줄거리를 말해버리면 재미가 떨어져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게 일반적이다. 시나리오의 내러티브, 반전 등에 집착하는 영화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데 헐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 중 시나리오에 신경 좀 썼다고 하는 영화의 대부분이 그렇다. 놀랍게도 스토리가 명확함에도 제대로 줄거리를 설명해주기 힘든 영화도 있다. 그런 영화는 그냥 ‘스티븐 시걸이 동료를 죽인 범인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라고 말하면 간단히 끝나는 영화들이다. 줄거리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자니 너무 구차해지고 듣는 사람도 몹시 짜증이 난다. 롤라 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역시 내러티브(많은 이들이 주로 관심을 갖게 되는)를 중심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남자 친구를 죽을 위기에서 구하기위해 롤라가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결국 남자 친구와 행복하게 손잡고 걸어가며 끝나는 영화라고 아무리 목에 힘을 주고 이야기한들, 누가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겠으며 그 설명이 과연 이 영화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표현해주고 있는 말이 되겠는가. 여기에서 문제가 드러난다. 흔히 많은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하고, 관람하는데 있어서 그 내러티브에 대해, 다시 말하자면 산문적인 요소에 대해 너무도 집착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영화가 말로써 의미를 전달해주는 장르가 아니라 음향(대사가 아닌 소리)과 영상을 종합하여 의미를 전달해주는 장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사람들임이 틀림없다. 영화가 종합 예술인 까닭은 앞서도 말했듯 음향과 영상이 합쳐져서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야 할 요소가 있다. 연극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편집’이라는 후작업이 그것이다. 한 롤의 긴 필름을 어떻게 잘라서 어느 곳에 붙이느냐에 따라 영화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가 있게 된다.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묘미이다. 롤라 런은 그런 영화의 묘미를 십분 살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내 또래의 젊은이라면 롤라 런을 보고 나서 누구라도 텔레비전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티브이 인생극장’ 이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릴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미래를 보여줬던 인생극장과 롤라 런은 언뜻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생극장은 롤라 런보다는 오히려 빨간 약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라는 매트릭스 쪽에 가깝다. 그것은 한순간 한순간의 갈래에 따라 무수히 많은 것들이 쏟아져나온다는 양자역학이론과 통하는 이야기이고 만약 선택이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면 (네오의 경우처럼 세상을 구원하느냐 그냥 이대로 사느냐) 그것은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본래성과 비본래성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롤라 런에 있어서의 선택은 선택이라기보다는 그저 상황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논리이기보다는 서술구조를 비틀어내어 현실을 해석하고 재배열, 강화시킴으로써 현실 세계를 초월하면서도 현실에 얽매이는 이미지를 창조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롤라 런이 가치를 갖고 영화가 영화다울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절묘한 편집을 통해 뭔가 잘 풀릴 것 같다가도 마나가 죽게되고 혹은 아버지가 죽게되고 그러다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겠는가. 마나가 죽게되는 결말만이 현실이고 나머지는 그 찰라의 순간에 롤라 혼자서 상상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롤라와 마나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돈까지 잔뜩 벌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안좋은 의미에서의) 시골뜨기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언뜻 현실과 동떨어져있는 듯한 구조의 이야기는 오히려 현실을 말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일 수가 있다. 진리를 말하는데 있어서 광대의 언어가 가장 효과적일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틀린 시간의 구성과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각각의 결말(어떤 것이 진정한 결말인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지만)들은 결국 현대인들 각자가 품고 있는 욕망과 문제점들에 대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롤라가 아버지의 불륜을 목격하고, 강도까지 해가며 돈을 구해갔을 때, 마나는 유리에 부딪쳐죽고 만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롤라가 생각해낸 결말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것은(어쩌면 롤라는 아버지와 시간을 끌었기 때문에, 결국 아버지 때문에 마나가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을 노골적으로, 하지만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영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영상이다. 영상면에서는 우리가 익숙한 헐리우드의 화면에 비해 조금 어색한 면이 없지 않지만 만약 나이 어린 후배가 물어본다면 독일 뒷골목의 암울한 색채를 화려한 원색(롤라가 집에서 보는 텔레비전의 영상이라든지 애니메이션)과 조화시키고 뚜렷한 명암의 대비나 광각렌즈를 이용하여 주관적 구도를 잡아냄으로써 롤라 개인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적당했다고 잘난 척하는 태도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적인 면이 있었다. 일상의 평범함이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질 때, 이렇게 ‘열린 구조’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정서함양을 위해서나 아니면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서나 무척 바람직한 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정말 재미없다. 영화는 너무 길고 시트콤은 너무 짧으며 미니시리즈는 다음 화를 기다리는 게 짜증난다. 으아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