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던 후배 녀석이 인도로 여행 떠난 지 2주 정도 되었다. 인도에 도착한 둘째 날,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형, 그 동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코메디가 있었어요."
인도가 매력적인 이유이자 더없이 짜증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황당한 코메디들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점. 처음에는 황당했던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다보니 나중에는 감흥도 사라지고 기억에도 잘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끔은 인도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기까지 한다.
인도에서 황당했던 일들, 그 중 몇 가지는 기억난다. 어떤 것은 나의 경험이고 어떤 것은 들은 이야기이다.
강 건너에 우리집이 있어.
본인이 여행하다 만난 형 중에서 S라는 형의 이야기다. 그 형은 2001년에 인도에 갔을 때 처음 만났다. 그리고 2003년에 인도에 갔을 때, 델리 파하르간지에서 우연찮게 마주치게 되었다. "형 언제 인도에 또 나왔어요?" 라는 나의 질문에 S형은 "어, 집에 들어간 적도 없어." 라고 대답했다. S형은 그런 인물이다.
S형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마을에서 혼자 길거리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껄렁해 보이는 인도인이 S형에게 접근했다.
껄렁한 놈 : 헤이, 친구! 나랑 이야기나 하자.
S형 : 나는 네 친구 아니거든. 이야기도 하기 싫어.
껄렁한 놈 : 너 인도에 오래 있었나 보구나. 이야기나 하자.
S형 : 너만큼 있었겠냐. 무슨 이야기 하려고? 여자? 돈? 너 같은 애랑 수도 없이 이야기해 봤는데 별 볼일 없더라.
껄렁한 놈 : 아니야, 아니야. 나는 특별해. 나랑 이야기 하자!
S형은 결국 그 와의 대화에 응하기로 했다.
S형 : 뭐가 그렇게 특별한데? 이야기나 한 번 해 봐라.
껄렁한 놈 : (강 건너를 가리키며) 저기 강 건너에 우리집이 있어.
S형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누구도 '저기 강 건너에 우리집이 있어.' 따위의 허접한 말로 대화를 시작했던 놈은 없었던 것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S형은 그 인도인의 껄렁한 모습에서 순간 철학적인 느낌마저 받았다고 한다. S형은 그의 대화에 매료되어 결국 그의 집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위를 살피더니 집안 구석에 있는 항아리를 들추어 내고 그 안에 굴을 파서 감추어 놓았던 뭔가를 꺼냈다고 한다. 그리고 형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껄렁한 놈 : 하시시! 500 루피!
그는 마약상이었다.
스페셜 티
인도에서 '스페셜'이라는 말이 붙는 음식은 일반적으로 하시시가 들어있어 먹으면 숑가는 종류의 음식이다. 내가 경험했던 스페셜 티는 물론 하시시가 들어간 것이 아니다.
인도 남부의 바르칼라 해변이었다고 기억한다. 조그마한 해변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고, 대부분의 해안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곳에 앉아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앉아있다 보면 술 생각이 나지만 인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아무 가게에서나 술을 팔지는 않는다. 친구와 나는 술 팔 만한 카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피빨이 : (좀 번듯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맥주 있어?
주인 : 맥주는 저녁에만 팔아. 지금은 친구(나를 지칭함)가 술을 원한다면 피나콜라다를 줄 수 있어. 특별히 스트롱하게 해 줄게.
카페의 주인장이 만들어온 피나콜라다는 특별히 세지는 않았으나 걸쭉하고 미지근하기는 했다. 그리고 주인장은 내가 그걸 먹고 취하지는 않을까 몹시 걱정하는 눈치였다. 여튼, 맥주를 판다하니 친구와 저녁에 다시 방문하여 탄두리 닭과 맥주를 마시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날 저녁.
피빨이 : 시원한 맥주 두 병이랑 탄두리 치킨.
주인 : 노 프라블럼. 너희들은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들이구나.
그런데 막상 주인장이 들고온 것은 조그마한 커피 잔 두 개와 커다란 커피포트 두 개!
피빨이 : (불같이 화를 내며) 야, 맥주를 주문했다니까!
주인 :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대며) 쉿, 조용. 이건 스페셜 티야.
주인은 커피포트를 열며 그 안의 내용물을 보여 주었다. 맥주가 들어 있었다.
친구와 나는 그곳에서 여섯 병의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두 병을 더 주문하기로 했다.
피빨이 : 여기 맥주 두 병 더!
주인 : (물욕과 귀찮음 사이에 위치한 곤혹스러운 표정) 맥주 두 병? 마실 수 있겠어?
피빨이 : 노 프라블럼.
잠시 후, 부릉부릉 오토바이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20분쯤 지나 오토바이가 돌아온 뒤에야 우리는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고아나 시킴처럼 술이 자유로운 곳이 아닌 이상, 인도에서 술을 파는 음식점은 두 종류이다. 인도치고는 굉장히 고급스럽고 정중한 응대를 해 주는 곳이거나, 아니면 동네 불량배들이 언제 총을 꺼내 들며 소리를 질러 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음침한 곳. 그 외의 음식점들은 대부분 술을 팔 수 있는 퍼밋이 없으며 알콜샵에서 술을 사다가 단속을 피해 몰래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묵티나스 프로블럼
묵티나스는 사실 인도가 아니라 네팔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래킹 코스에 있는 마을이다. '소롱라'라는 고도 5,0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고 난 뒤 만나게 되는 마을로서 해발 고도는 3,400 정도.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가장 큰 어려움을 넘긴 기념으로 파티를 하곤 한다. 보통 묵티나스에서는 하룻밤만 자고 이동하곤 하지만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3박 4일동안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기간동안 같이 있었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독일인 여자도 있었다.
그 여자는 등산업계에서 명품으로 소문난 배낭과 등산복을 지니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돈은 별로 없는 듯 했다. 항상 양 적고 싼 음식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이 주는 초코바 등을 얻어먹으며 허기를 달래곤 했다. 돈이 떨어진 거면 빨리 산에서 내려가 ATM에서 돈을 찾으면 될 일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리 시간에 쫓기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 여자는 독일인 여자라고 하자.
어느 날 저녁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롱라에서 넘어온 일행들이 모여 파티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예의 돈이 없는 독일인 여자가 끼어 있는 게 아닌가? 그들이 마시고 있는 술은 다름 아닌 묵티나스 근처에서 유명한 술인 애플 브랜디! 소설 <개선문>에서 주인공이 즐겨마시는 칼바도스랑 비슷한 술이다. 나도 슬쩍 그 자리에 끼어서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내가 그 자리에 끼자 '독일인 여자'는 슬쩍 자리를 비키는 게 보였다. 숙소 주인장에게 애플 브랜디 한 병을 주문하려고 하자 소롱라에서 넘어온 일행 중 한 명이 말렸다.
소롱라 일행 : 이봐, 한국인. 너는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이곳에서 파는 애플 브랜디는 진짜 애플 브랜디가 아니야.
피빨이 : 어라, 나 여기에서 많이 마셨는데. (물론 다른 곳에서도, 술 만드는 곳에서도)
소롱라 신참 : '독일인 여자'가 진짜 애플 브랜디 파는 곳을 알았던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좋은 술을 구했어. 너도 마셔 봐.
피빨이 : '독일인 여자'가 가서 사갖고 왔어? 얼마인데?
소롱라 신참 : 응, 500루피. 세 병이나 사왔으니 실컷 마시자!
참고로 내가 알고 있는 애플 브랜디의 가격은 가물가물하지만 (위의 500루피도 가물가물) 한 병에 100루피 정도.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롱라 신참이 사갖고 온 애플 브랜디는 내가 마시던 애플 브랜디와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독일인 여자가 평소에 먹고 싶어하던 200루피짜리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델리 파하르간지 폭탄 테러
내가 아는 동생들 이야기이다. 그녀들은 기차역에서 내려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를 찾아 파하르간지 입구로 향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한 말쑥한 인도인이 그녀들에게 접근했다.
말쑥 인도인 : (다급한 투로) 너희들 지금 여기에서 뭐하는 거야? 지금 큰 문제(빅 프로블럼)가 발생했다고!
동생들 : 음? 주변에 사람들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있는데?
말쑥 인도인 :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래. 파하르간지에 폭탄 테러가 발생했어! 조만간 하나가 더 터질 거래. 빨리 대피소로 가자!
동생들은 이집트, 아프리카 등을 여행한 덕분에 나름 여행 초보에서 벗어났지만 인도에서라면 이제 막 공항에서 버스타고 기차역에 도착한 탓에 어리버리 적응이 안 된 상태. '인도란 과연 무섭구나.' 라는 생각에 말쑥한 인도인을 따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말쑥한 인도인이 대피소랍시고 데리고 간 곳은 다름아닌 여행사!
그곳에서 동생들은 수많은 인도 여행자들처럼 스리나가르 하우스보트 예약을 종용받았고 긴 말싸움 끝에 여행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블로그에 쓰기 민망한 이야기들도 있다. 나는 인도에서 여행할 때 언제나 인도를 욕하고 있었다. 그 때에는 내가 인도를 떠나면, 그곳을 그리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기도 했다.